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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와 고인돌, 최초의 국가 고조선


지난번의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에 이어 오늘은 계급이 생긴 청동기 시대,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에 대해 알아본다. 농사가 시작되어 인류 역사에 큰 변화를 일으킨 신석기 시대 이후, 청동기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2천년 ~ 1500년경 사이로 보고 있다.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한 금속이 청동인데 이 청동을 처음으로 사용하여 청동기 시대로 불린다. 광석을 불에 녹여서 쇠를 이용한 도구를 만든것은 신석기 농업 혁명에 지지 않는 대단한 발전이었다.


청동기 시대와 고인돌, 최초의 국가 고조선


청동기와 고인돌
구리를 불에 녹여서 주석, 아연을 섞어 만든 금속을 청동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청동의 발견이 이루어졌던 것일까?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된 사람들의 토기를 굽는 문화는 청동기에도 이어졌다. 사람들은 그릇을 구었던 가마에서 단단하게 굳어진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구리였다. 즉 가마 속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구리가 녹고 단단하게 되는 것을 발견하면서 칼이나 그릇과 같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되었다. 청동을 녹여서 부은 다음 칼이나 그릇을 쉽게 만들 수 있는 틀을 거푸집이라고 한다. 즉, 거푸집을 만들려는 물건의 모양을 미리 만들어 놓아 그 안에 쇠붙이를 녹여 붓게 되면 청동도구를 쉽게 만들 수 있게 된다. 이 거푸집을 청동기를 대표핮는 유물이다. 이와 함께 청동칼, 청동거울이 있다. 이후 검은 더욱 발전하고 거울도 섬세한 무늬로 발전하게 된다.


청동기 시대와 고인돌, 최초의 국가 고조선


청동은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에 매우 귀한 물건이었다. 신분이 높거나 부자들만 사용할 수 있었으며 만든 물건은 칼, 창, 무기, 거울 등의 장신구였다. 귀하고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생활용품, 그리고 농기구는 여전히 돌이나 나무였다. 청동으로 농기구를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그 기능은 돌칼에 비할바가 아니라고 생각은 하였지만 부족의 안전을 위해 무기만 청동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청동기 시대 토기 문화도 변화했다. 그 이름은 민무늬 토기이다. 신석기 시대 토기는 빗말무늬토기로 겉면에 빗살을 그려넣었으나 청동기 시대 토기는 무늬가 없었다. 이는 예술성이 떨어진 것이 아니다. 신석기 시대 토기를 구울 때 토기가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빗살무늬를 넣었으나 청동기가 되면서 기술이 발달, 더이상 토기가 갈라지지 않아 무늬가 필요없게 된 탓이었다.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것은 지배자들의 무덤인 고인돌이다. 길쭉한 돌을 골라 그대로, 혹은 약간은 손질해서 그대로 세웠는데 이를 선돌이라고 한다. 선돌의 높이는 2 ~ 3m 수준이었으나 가장 긴 것은 10m 이상이기도 했다. 마을과 마을 사이 경계를 표시하는 것이 선돌이었고 또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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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계급사회로 변화하다.
신석기에 시작된 농사. 그들은 조, 수수, 콩 같은 잡곡을 주로 재배했다. 청동기 시대가 되면서 농사는 또 한 번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벼농사가 시작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신석기에 농사가 시작되면서 벼농사가 바로 시작되어 알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주식인 벼농사는 청동기 시대에 시작되었다. 이는 농경이 발달하고 농기구가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땅을 개간할 수 있는 홈자귀, 벼를 베는데 사용했던 반달 돌칼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산량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로인해 남는 농산물도 생겼으나 남는 것은 모두 한곳에 모아서 보관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나만 열심히 일을 해도 똑같이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고 일할 의미가 없으며 내가 거둔 것은 스스로 내가 보관할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 그것이 일의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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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바람이 모여 자신이 농사짓고, 남게 된 것은 스스로 보관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사유재산이다. 농사를 잘 지은 사람은 먹고도 남았고, 농사를 짓지 못한 사람은 먹을 것이 없게 된다. 한 부족 안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계급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빈부의 격차로 인해 계급이 시작되었으니 이것이 청동기 시대 계급사회의 등장이다. 과거에도 지배자는 있었으나 신석기 시대  신분차이는 없이 평등했다. 하지만 청동기 시대 농업의 발달로 인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생기고, 이제 부자인 사람은 잘 나가게 된다. 지혜있는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 가장 많고, 힘이 있는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니 이것을 족장이라고 부르게 된다. 힘이 있는 족장은 부족원을 거느리는데 이 과정에서 부족원이 생산한 것들가지 독점하고 부는 더울 높아진다. 이제 평등사회는 무너졌다. 확실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생기게 된 것이다. 경제적인 부가 있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도 우세한 위치가 되었고 약한 이들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힘이 센 부족들은 다른 부족을 정복했고 이렇게 부족이 다른 부족을 점령하면서 국가가 생성되기 시작한다. 


청동기 시대와 고인돌, 최초의 국가 고조선


청동기시대, 그들의 삶
신석기 시대는 움집이었다. 그들은 땅을 파서 집을 지었고 그 안에 화덕을 넣었다. 청동기인들은 이제 땅을 파지 않고 땅 위에 집을 지었다. 움직이 아늑하고 따뜻하고 시원하고 좋았으나 비가 오면 침수되고 말았으니 이제 땅위에 집을 짓기로 한 것이다. 생활환경이 좋아지면서 인구는 더욱 늘어났고 정착생활도 안정되어 갔다. 가족끼리 모여 사니까 좋았고, 모두 한 곳에 모여 사니까 안전했고, 아이들이 많아지자 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생겨난다. 청동시대 여성과 남성의 삶은 어땠을까? 여성들은 집안일을 했고, 남성은 농사, 전갱의 일을 했다. 경제활동의 중심은 남성이었고 아버지가 중심이 되는 부권사회가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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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중요 포인트
시작은 기원천 2천 년 경 ~ 1500년 전에 시작되었다. 청동기가 사용되어졌으나 그것은 지배 계급의 무기나 장식품으로 사용되었다. 생활 도구와 농기구는 여전히 돌로 만들어졌으며 홈자귀, 반달돌칼과 같은 것을 간석기라고 한다. 민무늬 토기를 사용했다.

만주지역과 한반도 지역에 유물이 남아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으로 족장이나 군장 등 지배자들의 무덤이었다. 고인돌을 통해 청동기 시대가 계급 사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인돌의 크기가 지배층의 강한 권력과 경제력을 상징한다.

한곳에 모여살면서 본격적으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경제가 시작되었다. 사유재산을 가질 수 있었고 이로 인해 계급이 등장했다. 신석기 시대와 달리 벼농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농사의 중심은 조, 수수, 콩과 같은 밭농사 중심이었다.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는 도구가 크게 발달했다. 시냇물이 가까운 야산이나 구릉 지대에 모여 살면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집 주변의 땅을 개간해서 농경지로 이용했다. 처음에는 움집형태의 주거 공간이었으나 비가오면 침수가 되어 점차 땅 위에 집을 짓게 되었다. 생산력이 좋아지면서 먹고 남는 농산물이 생겼다. 사유재산이 생겼고 재산이 많은 사람, 없는 사람 등 빈부 차이, 그리고 계층이 양극화 되었다. 부족간에 정복 활동이 활발해졌다. 다른 부족을 정복하면 권력과 경제력은 더욱 막강해졌다. 이렇게 막강해진 부족은 국가로 탄생하게 된다. 남녀의 역할이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여성은 주로 집안일을 하였고, 남성은 농사나 전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청동기 시대와 고인돌, 최초의 국가 고조선


최초의 국가 고조선
힘이 센 부족은 다른 부족을 자꾸 정복하면서 국가로 자리잡았다. 그 중 한반도 지역에 가장 먼저 등장한 국가는 고조선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이다. 원래 이름은 조선이었으나 1392년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옛날 조선'이라는 의미로 고조선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이라는 의미는 무척 아름다운데 ' 아침이 신선하다' ' 해가 뜨는 자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 위에 만들어졌다. 이 시대가 청동기 시대이기 때문이다. 부족사회가 국가로 발전하기 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삼국유사'이고 이를 단군신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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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단군신화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있었다. 그는 늘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그곳으로 가고 싶어했고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싶어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인간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땅으로 내려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싶다는 그의 뜻을 알게된 하느님은 그의 아들 환웅을 위해 적당한 자리를 알아보았으니 그곳이 태백산 자락이었다. 하느님은 아들 환웅에게 천부인 3개, 세 신을 주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 다스려보라고 하였다. 천부인은 하느님이 내린 3개의 도장, 세 신이라는 것은 바람 신 풍백, 비의 신 우사, 구름의 신 운사였다. 세명의 신은 비, 바람, 구름의 조화로 인간에게 도움을 주라는 하느님의 뜻이었다. 환웅은 3천 여 명의 신하와 백성을 데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로 내려와 사람들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환웅이 내려온 곳에 호랑이와 곰이 살고 있었다. 녀석들은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환웅을 찾아가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그들은 환웅을 찾아간다. 환웅은 곰과 호랑이게에 쑥과 마늘을 주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이것만 먹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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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과 호랑이는 동굴로 들어가 마늘과 쑥만 먹으며 지냈다. 그러다가 굶어 죽을 것 같았지만 꼭 사람이 되고 싶었다. 호랑이는 더이상 못참겠다며 하루를 살더라도 편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나가버렸고 곰은 외롭고 무섭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21일이 되는 날, 곰은 사람이 되었는데 성별은 여자였고 그래서 웅녀라고 부르게 된다. 곰이 사람이 되었으니 아무도 혼인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웅녀는 신단수 아래에서 기도를 했다. 환웅은 이를 보고 안타깝게 여겨 웅녀와 혼인을 하였고 그 후 낳은 아들이 단군왕검이다. 하느님의 아들이었던 환웅, 환웅과 웅녀의 아들이었던 단군왕검. 그가 아사달에 도움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으며 이름을 조선이라고 칭하였으니 이때가 기원전 2333년이다. 단군왕검이 수도도 삼았던 아사달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평양이라는 주장도 있고 중국의 랴오닝 지방이라는 주장도 있다. 두 의견을 조합해서 처음에는 랴오닝 지방에 수도를 세웠으나 이후 평양으로 옮겼다는 주장도 있다. 아사달이라는 이름도 예쁘다. 아사는 우리말로 아침이고, 달은 땅을 의미한다. 아사달은 '아침의 땅'을 의미하는 우리의 옛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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