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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지역 이라크
중동 지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분쟁이 자주 일어난 지역이었습니다. 종교와 인종, 민족, 정치적인 갈등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 었습니다. 무엇보다 중동 지역은 세계적인 석유 생산지이므로 이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었습니다. 서로 자원을 차지하려는 중동 전쟁의 시발점은 유전 때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1980년에 영토 문제로 일어난 이란, 이라크 전쟁은 8년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은 전쟁 지역에 무기를 파는 데 정신이 팔려 중동 전쟁을 말리지 않고 오히려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87년부터 국제 연합이 중재에 나서면서 중동 전쟁, 이라크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라크는 이란과의 전쟁 때문에 많은 빛을 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이란은 페르시아 문화권을 이라크는 아랍 문화권을 대표하는 나라가 되겠습니다. 이란이 1979년 일어난 혁명으로 혼란에 빠지고 군사력이 예전만 못하자 당시 이라크 지도자 후세인은 1980년 이란을 기습적으로 처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후세인에 의한 이라크 전쟁의 시작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후 전쟁은 8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이로인해 군인 및 민간인 등 수많은 사상자를 낳은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대목이 되겠습니다.
중동지역 이라크
이후 이라크는 경제가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지도자 사담 후세인은 나라가 살길은 석유 매장량이 많은 쿠웨이트를 합병해 경제 강국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라크는 1990년 8월 2일 탱크를 앞세워 쿠웨이트 정복에 나서게 됩니다. 이후 쿠웨이트는 며칠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게 됩니다. 국제 사회는 냉전이 끝나 가는 마당에 평화를 위협하는 이라크의 행동을 가만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바로 국제 연합 안전 보장 이사회는 이라크를 크게 비난하고 즉각 물러날 것을 요구 하였습니다. 수출과 수입을 막는 조치도 함께 내렸습니다. 이후 미국, 영구 등 30여 개 나라들이 군대로 구성된 다국적군은 1991년 1월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 대규모 공습을 퍼부었습니다. 걸프 전쟁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라크는 급기야 이스라엘까지 미사일을 쏘았습니다. 이스라엘을 전쟁에 끌여들이면 아랍 국가들이 자신들을 도와 줄거라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미국은 전쟁이 중동 전 지역으로 번질까 봐 이스라엘이 보복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러자 이라크는 유전에 불을 붙이고 엄청난 양의 원유를 페르시아 만에 버려 환경테러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중동지역 이라크
하지만 다국적군이 힘은 상상초월 이었습니다. 결국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에서 쫓기듯 도망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압도적인 힘에 의해서 퇴출 당했습니다. 쿠웨이트는 이라크에 점령된 지 약 7개월 만에 해방되었습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1991년 2월 전쟁이 끝났음을 선언하였습니다. 걸프 전쟁은 냉전이 끝나 갈 무렵 처음으로 일어난 대규모의 국제전 이었습니다. 걸프 전쟁을 이끈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임을 세계에 과시를 했으며 중동 사회를 자국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하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미국의 주도로 국제 연합은 이라크에 경제 제재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라크 직항 노선 금지와 석유 수출 금지가 그 내용입니다. 총칼 없는 전쟁과 같은 이 조치로 이라크의 산업 생산 시설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수입에 의존하던 생활필수품 조차도 구할 수 없게 되면서 미국에 반발하는 사람들도 많아 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슬람 사회와 크리스트교 사회의 갈등을 크게 키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국적군이 펼친 사막의 폭풍 작전 : 국제 연합이 이라크에 쿠웨이트에서 병력을 거두고 물러나라고 했지만 이라크는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국적군이 펼친 사막의 폭풍 작전으로 바그다드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첨단 무기를 사용한 다국적국에 상대가 되지 않은 이라크군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중동지역 이라크
이는 훗날 사담후세인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미국은 이라크를 직접 침공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담 정권은 2003년 3월 20일 미국의 공격을 받고 3주 만에 무너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로인해 사담 후세인을 내몰아서 직접 미국에 있는 감옥게 가두기에 성공하였습니다. 이후 바그다드 부근의 미군기지로 이송 되었습니다. 그리고 재판에서 살상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고 2006년 12월 30일 처형 되었습니다. 처형후 그의 마지막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위대한 국가와 나의 민족들, 그리고 인류에게 여러분 다수가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사람이 신실하고 정직하고 다른 사람들 아끼고 현명하고 판단력이 훌륭하고 공정하고 단호하고 부유한 자들에게 신중하여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품은 넓은 마을 가졌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편지를 남겼다고 합니다. 죽을때까지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사담 후세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때부터 종교 문제로 번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 중 지금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슬람 종교를 바탕으로 한 무장단체가 되겠습니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로 테러를 일으키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 났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잔혹한 범죄 행위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전쟁은 정말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데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로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만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세계 곳곳은 종교적인 이념 문제로 전쟁을 벌이는 곳이 있습니다. 하루 빨리 전쟁을 멈추고 조금더 평화로운 세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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