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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임시수도기념관 이승만
부산 여행을 하면서 먹거리, 즐길거리만 보고 가지 말자고 했다. 부산에만 있는 역사의 흔적을 가보고 싶었고, 이정표에서 발견한 갈색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우리가 찾던 그런 장소였다. 오전 9 ~ 오후 6시 개방 매주 월요일은 휴관(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개관) 입장료, 주차료 모두 무료! 들어가는 문이 작아서 굉장히 작은 공간인가 보다했는데 둘러보니 볼거리와 배울거리가 굉장히 많았다. 아이와 함께 왔다면 방문기념 스탬프 좋을 것 같다. 우린 여자 둘이 왔지만 꼼꼼히 살펴보고 기분도 내보자며 스탬프 투어를 시작했다.
부산임시수도기념관 이승만 들어가자마자 6.26 전쟁 당시 포스터들이 붙어있었다. 가족을 찾는다는 것들, 어서 피하라는 공습 예고! 아, 1950년 얼마나 처절했을까. 역사를 좋아하지 않던 친구는 나랑 여행을 다니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무척이나 많아졌다. 잘 때마다 설민석 강의를 한 편씩 듣고 잔다고 자랑질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이런 곳에 오면 영상은 다 보고 다닌다. 오메오메~~ 위문 엽서도 있었네? 6.25 전쟁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 놓은 공간. 원래 이곳은 1926년 8월 10일에 준공된 경남도지사 관사였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 임시수도 관저로 1950년 ~ 1953년까지 사용되었고. 1983년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빈 공간을 그 다음 해인 1984년에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개관하게 되었다.
부산임시수도기념관 이승만
전쟁 당시 살았던 피란민들의 판잣집 나무 마저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미군들이 먹고 버린 통조림캔을 펴서 집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국제 시장의 모습을 전시해 놓은 공간. 부산의 밀면은 6.25전쟁 탈향민의 아픔으로 탄생된 음식이다. 이북 피란민들은 부산에서 그들 고향 음식인 '냉면'을 만들어 팔고자 하였으나 감자나 메밀을 구하기 힘들어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밀가루로 만든 밀면, 부산 밀면의 시작이 되었다. 전쟁 중에도 멈출 수 없는 교육의 현장들. 조금 어려운 공간도 있는데 6.25전쟁 당시 정치 상황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전쟁 중에도 대통령 선거는 했네! 아, 이승만! 해설사분이 상주해 계셔서 어려운 내용도 그나마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정말로 유익했던 공간이었다. 2개의 건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 전시관을 둘러보고 대통령 관저로 이동하는 길에는 6.25전쟁 당시의 상황을 담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 그때도 칼라 사진이 있었구나. 그래서 더 생생하게 다가왔던 그날의 흔적들. 가시철조망을 보는 순간 맞아,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지 슬프기도 했고, 파주 임진각에서 보았던 풍경들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여기는 대통령 관저다. 그러니까 이곳이 부산 임시수도 역할을 할 때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렀던 장소. 대통령 관저를 보면서 솔직히 나는 화가 났다. 울화통이 치밀었다. 응접실로 사용하던 장소인데 국민들 다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와 이런 곳에서 지냈다는 것이 사실 그렇게 호화스러운 공간은 아니었지만 꼴보기 싫었다.
부산임시수도기념관 이승만
왜냐하면 대통령 별장 청남대에서 보았던 풍경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다. 그래서 더 화가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승만 대통령의 서재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을 때 미국에서 귀국하며 들고 온 가방이란다. 대통령 내외가 머물렀던 내실, 식당과 부엌 등 둘러보면서 콧방귀가 자꾸 나왔다. 전쟁 그 난리 중에도 요리사도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이니 당연한 건가? 그래 국가의 원수니!! 이건 정말 대통령 별장 청남대에 뒤지지 않는다. 이렇게 잘해놓고 살았어도 됐던 건가요. 6.25전쟁의 생생한 기록들. 인민군들은 낮에는 민간인 행세를 하다가 밤에 아군과 교전을 벌이기도 하고 민간인들을 집단학살하기도 했다고 한다. 솔밭이라는 곳에서는 여학생들의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던데 인민군들이 여학생들에게 어떤 행동을 하고 죽였는지 그 말은 입 밖으로 꺼내기도 무섭다. 대통령 관저 2층에 영상실이 있어서 또 몇 분을 시청했다.
부산임시수도기념관 이승만
아쉬웠던 건 에어컨이 1층에만 설치되어 있어서 2층을 둘러보는 내내 땀이 줄줄 흐른다. 1950년 8월 18일 ~ 1953년 8월 15일까지 1023일 임시수도 역할을 했던 부산. 1950년 6월 29일 새벽부터 부산역 광장으로 피란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장 안전한 부산이었지만 이곳에서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겠지. 둘러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정부는 피란민들을 광주 서남쪽으로 유도했다는 거다. 부산이 이미 포화상태라고 해도 가장 안전한 곳을 놔두고 그랬어도 됐던 건가. 넓은 장소는 아니어서 둘러보는 일은 1시간 ~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여기는 피란 학교. 작지만 참 알찬 장소였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6.25전쟁의 기록을 살펴볼 수 있었고, 그분은 참 나빴다(정중하게)...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다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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