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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유럽의 지배에 벗어나다.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의 독립 혁명과 이에 영향을 받아 일어난 프랑스 혁명은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었습니다. 그동안 식민지 삶을 살았던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은 너도나도 독립의 깃발을 높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19세기 초 유럽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매우 혼라스러웠습니다. 본국이 정신을 빼앗긴 틈을 타서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 운동을 전개해 나가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동안 식민지 사람들은 유럽 본국의 식민지 정책에 불만이 매우 컸습니다. 심한 약탈과 힘든 강제 노동 등으로 식민지 사람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았습니다. 라틴 아메리카는 오랫동안 유럽의 식민지 상태였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도 점점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유럽에서 라틴 아메리카로 건너온 에스파냐 사람이나 그 후 손인 크리오요, 원주민인 인디오와 흑인, 흑인과 백인 사이에 태어난 물라토는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을해야 했습니다. 메스티소는 크리오요에게 고용되어 제일 아래층의 지배 계급 노릇을 하였습니다.
점점 수가 늘어난 크리오요는 식민지 사람들을 다스리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본국 에스파냐 관리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크리오요들은 이러한 처지에 불만을 품고 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식민지 사람들과 힘을 합쳐 독립을 꾀하였습니다. 그 후 1804년에는 흑인 노예인 투생이 주도하여 세계 최초로 노예들이 혁명을 일으켜 세운 나라, 아이티 공화국이 탄생하였습니다. 아이티는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나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독립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멕시코의 독립이 본격화 되었습니다. 멕시코는 에스파냐의 여러 식민지중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에스파냐의 감시와 통제가 더 철저했기 때문에 저항 운동은 번번이 벽에 부딪혔습니다. 하지만 에스파냐가 나폴레옹 군대의 공격을 받으며 조금씩 틈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독립을 향한 전진을 시작한 사람은 돌로레스 마을의 신부인 미겔 이달고 라는 신부였습니다. 프랑스 혁명 사상의 영향을 받은 이달고는 원주민인 인디오들이 어려운 생활을 벗어날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치고 일자리도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세프냐군이 이달고의 포도밭에 쳐들어왔습니다. 군인들은 식민지 사람들은 에스파냐 법에 따라 에스파냐 포도주를 사 먹어야 한다면서 포도밭을 짓밟았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되겠습니다. 이달고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에스파냐군의 야만스러운 행동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후 1810년 그는 성당의 종을 쳐서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러고서는 에스파냐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두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크게 외쳤습니다. 이 연설이 멕시코 독립 운동의 발단이 된 돌로레스의 외침이 되겠습니다. 연설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이달고의 뜻에 함께 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달고는 인디오들을 이끌고 멕시코시티로 진격하다가 에스파냐군에 체포되어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남쪽 지방에서 반란을 이어 간 사람은 모렐로스 신부였습니다. 모렐로스 신부 역시 체포되어 죽임을 당하였고 그의 뒤를 이투르비데가 이어 갔습니다. 원래 이투르비데는 이달고와 모렐로 신부를 막는 데 앞장선 군인이었습니다. 자신이 식민지 태생의 크리오요라는 이유로 훈장을 받지 못하게 되자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결국 이트루비데는 군인으로서의 지도력을 발휘하여 1821년 멕시코 공화국을 세웠습니다.
멕시코의 독립은 근처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에게 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중 브라질은 포루투갈의 식민지 나라로 포루투갈이 브라질을 발견한 것은 1500년쯤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후 브라질로 온 유럽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데리고 온 흑인들과 원주민이 인디오를 노예로 삼아 사탕수수를 재배하였습니다.
브라질에 있는 수많은 금과 다이아몬드도 약탈하였습니다. 1807년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포르투갈 왕실이 브라질로 도망을 오면서 식민 정책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브라질은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항구를 개방하면서 경제를 발전시켰고 왕국의 지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뒤 왕은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갔지만 페드루 왕자는 브라질에 남았습니다. 왕이 본국으로 돌아오자 포르투갈은 브라질을 다시 식민지로 취급하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페드루 왕자가 1822년 브라질의 독립을 선언하고 초대 황제인 페드루 1세로 즉위하였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독립을 말할 때 절대 빼 놓을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시몬 볼리바르입니다. 베네수엘라의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볼리바르는 청년 시절 유럽을 여행하다가 계몽사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계몽사상은 경제적으로는 부유해도 정치적으로는 힘을 가질 수 없었던 크리오요 출신인 그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하여 눈뜨게 해 주었습니다. 조국으로 돌아온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의 독립을 꿈꾸었습니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볼리바르는 안데스 산맥의 깊은 계곡을 넘나들고 울창한 밀림을 헤치면서 에스파냐군과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드디어 에스파냐의 식민 지배를 무너뜨리고 1811년 베네수엘라 공화국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와같이 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위대한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들은 희생정신이 있어서 지금의 여러나라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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