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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대륙봉쇄령
나폴레옹이 명한 대륙 봉쇄령
나폴레옹이 1806년 대륙 봉쇄령을 발표한 이유는 영국을 고립시며서 경제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나폴레옹에게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사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싶어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혀서 굴복하게 만들 속셈이였습니다. 하지만이는 오히려 실패로 끝났습니다. 나폴레옹의 생각했던거와 달리 오히려 영국의 산업은 더욱 발전하였고 결국 이 정책은 나폴레옹이 몰락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럼 나폴레옹에게 영국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정복 전쟁의 커다란 걸림돌 영국은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해에 영국은 러시아,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프랑스에 싸움을 걸러 왔습니다. 처음 시작은 영국이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이 기회에 영국을 굴복시킬 작정이었지만 넬슨 제독이 있는 영국 함대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전쟁을 트라팔가르 해전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한편으로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연합군을 굴복시켰으며 프로이센에 쳐들어가 베를린을 점령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나폴레옹은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를 정복해 나갔으며 바다 건너 영국만은 나폴레옹 손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힘으로는 영국을 이길수 없다는 걸 안 나폴레옹은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유럽 여러 나라들에게 영국과는 무역을 하지 말라는 명력을 내렸는데 이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영국 봉쇄령이 되겠습니다. 내용을 살펴보자면 제1조 영국의 여러 섬을 대륙으로부터 철저히 차단한다. 제2조 영국의 모든 무역과 통신 등을 금지한다. 제3조 영국이나 그 식민지와 무역을 한 배는 대륙의 어떤 항구에도 들어올 수 없도록 한다. 이렇게 세가지로 강한 영국 봉쇄령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원정으로 인해서 나폴레옹 몰락은 서서히 시작되었습니다.
대륙 봉쇄령을 발표하자 처음에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를 잘 따랐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강하게 반발하였습니다. 영국과이 무역에 의존하고 있던 다른 나라들도 물자가 부족하고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자 반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륙 봉쇄령은 프랑스에도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혔습니다. 영국에서 면화같은 원자재를 들여오지 못해 물가가 크게 오르자 주요산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고 해운업도 전보다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러시아가 대륙 봉쇄령을 무시하고 영국과 무역을 하자 이에 화난 나폴레옹은 본때를 보여주기위해 러시아로 원정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결국 엄청난 수의 군사를 잃고 후퇴하고 말았는데 이때를 놓치지 않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대 프랑스 동맹을 맺고 라이프치히에서 2년 뒤에는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물리쳤습니다,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유배됨으로써 나폴레옹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럼 나폴레오 러시아 원정에 대해서 조금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러시아가 마침내 영구과 무역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한 나폴레옹은 1812년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러시아군은 맞서 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기세등등해진 프랑스군은 별다른 저항을받지 않고 손쉽게 모스크바까지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텅텅 빈 모스크바는 전날부터 불이 붙기 시작해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당시의 군인이 우리는 불의 땅, 불의 하늘 아래, 불의 두벽 사이를 걸었다고 기록할 정도였습니다. 그후 며칠 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로 다시 들어가 크렘린 궁정에서 러시아와 협상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꿈쩍도 않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혹독한 추위의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눈이 엄청 내리고 매서운 바람이 인정사정없이 사방에서 불어왔습니다. 프랑스 군사들은 피로와 추위 그리고 굶주림으로 점점 지쳐 갔습니다. 나폴레옹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군대는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 군대는 곳곳에서 러시아 농민들과 군사들의 공격을 받으며 겨우 겨우 나아갔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져 죽은 말고기를 먹어 가며 버텼지만 굶어죽는 군사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습니다. 겨울 군복을 입지 못해 동상에 걸려 죽어 가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 군대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여 간신히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러시아 원정에 대실패하면서 나폴레옹에게 최대의 위기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원정에서 너무 낳은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틈을 이용하여 프랑스에 점령당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영국과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라이프치히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한판 승부를 겨루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크게 지고 말았습니다. 연합군은 거침없이 파리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파리를 지키던 프랑스군은 순순히 항복했습니다. 결국 영원할 것만 같았던 나폴레옹의 시대도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유배된 섬에서 탈출한 뒤 한 번 더 전쟁을 일으켰지만 이역시 실패로 돌아가며 영영 다시는 프랑스로 돌아올수 없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영웅의 몰락이겠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아던 그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욕심이 화를 불러왔습니다. 영국과 친하게 지내기만 했어도 이렇게 참혹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래도 자기자신과 프랑스과 최고라는 이념이 기본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것 같습니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그 화는 자기한테 오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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