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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정 선포, 베르사유 조약

글로리아 2022. 1. 1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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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정 선포, 베르사유 조약



루시타니아호 격침 사건이 일어났던 1915년 이탈리아가 연합국으로 참전하였습니다. 이탈리아는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과 제 3국 동맹을 맺은 사이이므로 전쟁이 일어나면 동맹국편에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중립을 지키여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지 않다가 연합국이 이기면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영토 일부분을 받는 조건으로 뒤늦게 연합국 편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미국까지 연합국으로 참전하자 전쟁상황은 동맹국에게 불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미국이 연합국에 가담한 1917년에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전쟁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18년 러시아는 독일과 조약을 맺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발을 뺐습니다.  러시가가 철수하자 독일은 서부 전선으로 병력을 이동하여 연합국에 대규모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대공세는 실패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동맹국에는 패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습니다. 오스만 제국과 불가리아에 이어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도 1918년 11월 전쟁을 중단할 것을 선언하고 항복하였습니다. 긴 전쟁에 지쳐 독일 안에서도 전쟁을 끝내자는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킬 군항에서 독일 해군들이 거세게 항의를 하자 많은 독일인들이 그들을 지지하며 전쟁을 일으킨 독일 황제 빌헬름 2세 퇴위를 강요하였습니다. 결구 빌헬름 2세는 왕위에서 내려와 네덜란드로 망명하게 되었습니다. 곧이어 독이에는 공화정이 선포되어 임시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 공화정 :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게 아니라 국민이 선거를 통해 뽑은 사람이나 집단이 국가의 대표가 되는 정치 제도 입니다.

 

 

공화정 선포, 베르사유 조약

 


1918년 11월 11일 공화정으로 인해 세워진 독일의 새 정부는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겠다는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로써 제1차 세계 대전의 총소리가 드디어 멈추게 되었습니다. 4년여 동안 수많은 목숨을 빼앗은 제1차 세계 대전은 이렇게 동맹국의 패배로 끝났게 되었습니다. 독일이 왕권정치에서 벗어나며 공화정이 선포되자 새로운 국제 질서가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4년여 동안 벌어진 전쟁으로 유럽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주범 독일과 동맹국에 전쟁의 책임을 묻기 위해 1919년 1월에 연합국 지도자들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 모여회의를 열었습니다. 파리 강화 회의라고 불리는 이 회의를 프랑스의 총리 클레망소, 영국의 총리 로이드조지, 미국 대통령 윌슨이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조약의 내용을 놓고 세 사람의 의견을 달랐습니다.  전쟁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프랑스는 독일이 다시는 유럽의 평화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제재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영국도 마찬가지로 독일을 벌해야 한다는 데 프랑스와 의견이 일치하였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와 달리 강력한 제재를 하는 것은 망설였습니다. 독일의 힘이 너무 약해지면 공산주의 정부가 세워진 러시아를 견제할 유럽의 힘이 약해질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윌슨은 각 민족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민족 자결주의를 포함한 14개 원칙을 들며 전쟁을 방지하는 국제기구인 국제 연맹을 만들 것 제안하였습니다. 회의를 주도한 영국, 프랑스, 미국은 몇 차례의 협상 끝에 1919년 6월에 비로소 합의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을 공식적으로 끝내게 되는 베르사유 조약은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체결되었습니다. 또한 연합국은 전쟁의 책임이 전적으로 독일에 있다고 못을 박고 독일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군비를 줄여 군사력을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1,320억 마르크라는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렸습니다. 이는 2년 동안 독일 국민이 생산한 모든 것을 하나도 쓰지 말고 배상금으로 내라는 말이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을 바탕으로 유럽에 새로운 국제 질서가 성립되었는데 이를 베르사유 체제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연합국은 전쟁에서 패한 나라의 당을 새롭게 나누었습니다.


민족 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패전국 식민지를 독립시켜 위임 통치라는 명분으로 나누어 가졌습니다. 연합국은 18세기 이후 독일에 지배당했던 폴란드를 독립시켰습니다. 그리고 독일이 차지한 알자스-로렌 지역을 프랑스에 되돌려 주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은 해체되어 서쪽의 오스트리아와 동쪽의 헝가리로 나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두 나라가 이 때 나뉘어진 것 입니다. 연합국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영토 북쪽의 보헤미아, 모라비아, 슬로바키아, 루테니아 지방을 하나로 묶어 체코슬로바키아로 만들었습니다. 연합국편에 선 루마니아는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영토 일부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나라는 둘로 갈라지고 영토의 대부분을 빼앗겼으며 이로인해 여러 독립 국가들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 : 윌슨 대통령은 1918년 1월 14객 조하으이 평화 원칙을 발표해 소수 민족의 자결권과 모든 국가의 독립을 보장할 국제 조직을 만들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각 민족은 스스로 정치적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으로 식민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3.1절 운동도 이에 자극받아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승전국의 식민지에는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모순된 부분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민족 자결주의라고 하면 국민들이 자신들이 직접 정치를 갖고 나라의 운명을 결 정 짓는 권한을 주워져야 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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