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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등장, 루이 16세

글로리아 2022. 3. 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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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등장, 루이 16세


라틴 아메리카의 위기 바로 새로운 강대국 등장입니다. 바로 미국이 되겠습니다.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에 조금씩 손을 뻗기 시작하더니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점령하거나 정치에 간섭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라틴 아메리카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하였지만 정치와 경제적으로 미국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말로 혹때려다 혹붙인 격으로 유럽의 열강이 라틴 아메리카를 다시 손에 넣겠다는 야심을 접자 미국이 숨겨 왔던 발톱을 드러낸 것입니다. 특히 한 나라의 경제를 다른 나라가 쥐고 흔든다는 것이 문제가 되겠습니다. 이는 그 나라를 경제적인 식민지로 삼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각 나라의 내부 사정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각 나라의 지방에는 크리오요 출신으로 개인적인 군사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카우디요라고 불렀습니다. 카우디요들은 독립전쟁에 앞정섰던 사람들로 독립 후에도 나라 안에서 중요한 세력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정권을 잡은 카우디요는 국가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였고 이로 인해 독재자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무엇보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등의 사정이 심각하였습니다. 


독립은 하였지만 국민들은 독재에 시달리고 나라는 혼란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 왕자 페드루의 독립 선언으로 평화적인 독립을 이루었지만 막상 황제의 자리에 오른 페드루는 독재를 일삼았습니다. 멕시코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과 영토 전쟁을 벌이느가 하면 내전도 치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디이스 독재 정권은 35년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라틴 아메리카는 원주민 인디오의 풍부한 민속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유럽 문화, 아프리카 문화 등과 섞이면서 라틴 아메리카만의 독특한 다문화 사회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럼 다음으로는 라틴 아메리카 독립의 물꼴을 튼 프랑스 혁명의 계기가 된 사건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1770년 어느 날, 프랑스 왕궁이 들썩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왕의 손자인 루이 16세 의 결환식 날이었습니다. 신부는 오스트리아의 여자 황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마리 앙투아네트였습니다. 프랑스 국민들은 꽃같이 아름다운 그녀를 진심으로 반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두 나라의  관계가 좋아지기를 바라는 목적에서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결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 루이 15세가 떠나자 손자인 루이 16세가 왕위르 이어받았습니다. 루이 16세의 아버지는 이미 1765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가 왕위르 이어받았던 것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열아홉살의 나이에 한 나라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이후 베르사유 궁전에는 늘 흥겨운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습니다.


 귀족들을 위한 화려한 파티가 밤낮으로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럼 궁전 밖의 평민들은 어떻게 생활을 했냐면 그야말로 말할수 없으정도록 궁핍했습니다. 궁전 안의 하루하루와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특히 농민들은 영주의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그 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용, 세금 등을 내며 힘겹게 살았습니다. 그 당시 프랑스 국민들은 세 가지 신부을 나뉘어 있었습니다. 가장 높은 1신분은 성지자였고, 2신부은 귀족이었습니다. 제일 아래 3신분이 평민으로 농민, 상공업자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직자와 귀족들은 프랑스 전체 인구의 약 2퍼센트였지만 프랑스 땅의 대부분 소유하고 있으면서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높은 관직을 차지하고서 특권이란 특권은 다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니 국민의 대분을 차지하는 제 3신분인 평민들은 일은 일대로 힘들게 하면서 세금까지 꼬박꼬박 내야 했습니다. 또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점점 쌓여 가는 평민 계급의 불만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돈을 벌어 부자가 된 상인이나, 판사, 변호사 같은 시민들은 그 당시 널리 퍼져 있던 계몽사상을 접하고는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계몽사상은 루소, 볼테르 등이 주장한 것으로 왕이 마음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교회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면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 사람들이 영국 국왕에 맞서 독립했다는 소식도 들려오는 가운데 낡은 제도와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시민이 자유롭게 사는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이 점점 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귀족들과 초호화 파티를 열고 옷과 모자등을 사들이느라 돈을 흥청망청 써버렸습니다. 성품이 온순한 루이 16세는 관리들에게 선심을 쓰고 취미생활인 사냥을 즐기느라 국정을 돌보지 않고 돈을 펑펑 쓰기만 했습니다. 그러니 나라 살림은 지출이 수입보다 훨씬 많았으며 이로인해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전쟁에서 영국에게 지고 미국의 독립 전쟁을 지원하는 바람에 파산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손을 벌려 빚을 얻어 오기까지 했지만 그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빚투성이인 나라의 재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이러저런 궁리르 하던 루이 16세는 그동안 세금이 면제되었던 귀족도 세금을 내는 개혁안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귀족들은 순순히 세금을 내지 않았으며 귀족들은 강하게 반발하였습니다. 마침내 루이 16세는 삼부회를 열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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